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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역사탐방 #4] 도심 속 시간이 멈춘 왕실의 후원과 예술의 요람, 서울 성북구 '성북동 앵두마을'

by “동네를 걸으면 역사가 보입니다.” 2026. 5. 22.

많은 사람이 '성북동'이라고 하면 웅장한 대저택이 모여 있는 부촌이나 세련된 갤러리, 혹은 탁 트인 성곽길 드라이브 코스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한양도성 북쪽 자락, 북악산의 동쪽 골짜기가 품어 안은 성북동의 가장 깊숙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조선 시대 왕실의 숨결과 근현대 문인들의 낭만이 흙벽과 돌담 사이에 고스란히 스며 있는 작고 고즈넉한 마을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성북동(城北洞) '앵두마을'입니다.

 

성북초등학교 뒷길을 따라 펼쳐지는 이 작은 마을은 오늘날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짙은 '옛 서사'와 '문학적 정취'를 간직한 채 숨죽이고 있습니다.

화려한 광역도시 서울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 채,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고요한 마을의 책장을 한 장씩 펼쳐보겠습니다.

1. 이름에 새겨진 역사와 유래

성북동 앵두마을이라는 이름에는 왕실의 극진한 효심과 군사적 방위, 그리고 자연이 준 소박한 선물이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城北(성북): 한양도성의 북쪽을 지키는 요새와 군사들의 삶

성북동이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한양도성의 북쪽(城北)'에 위치한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조선 시대 이 지역은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 군사 기지 중 하나인 '어영청'의 북둔(北屯)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군사들이 이곳에 상주하며 도성을 지켰고, 조정에서는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메주를 만들어 궁궐에 납품할 수 있는 전매권을 주기도 했습니다. 군사들의 땀방울과 훈련 소리가 울려 퍼지던 요새가 바로 이 동네의 첫 얼굴이었습니다.

앵두마을: 어머니를 향한 왕실의 효심이 피워낸 붉은 과실

'앵두마을'이라는 이름 뒤에는 조선 시대 왕실의 애틋한 서사가 숨어 있습니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후기 왕실에서 대비의 건강과 효도를 지극히 생각하여, 궁궐과 가까운 이 북악산 자락 골짜기에 앵두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고 가꾸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봄이 되면 골짜기마다 하얀 앵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초여름이면 보석 같은 붉은 앵두가 온 마을을 물들였습니다.

영남대로의 길목이었던 원지동 안골마을이나 중인들의 문학 공간이었던 옥인동 서촌처럼, 이곳 앵두마을은 왕실의 후원이자 자연이 베푼 풍요로움이 마을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거대한 앵두나무 숲은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집 마당 구석이나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여전히 봄날의 앵두꽃과 초여름의 붉은 열매가 피어나며 그 귀한 이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 깊이 있는 역사의 흔적, 가볼만한곳

①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 (근대 문학의 향기가 머무는 곳)

앵두마을 초입과 맞닿은 곳에는 단편소설의 대가, 상허 이태준 선생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거주하며 《문장》지를 편집하고 《달밤》, 《돌다리》 등 한국 문학사의 길이 남을 명작들을 집필했던 고택 '수연산방(壽硯山房)'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인들이 모여 벼루를 만지는 산속의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대 최고의 문학가들이 모여 예술을 논하던 문학의 요람이었습니다.

나지막한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정갈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아담한 누마루가 돋보이는 전통 한옥이 정취를 더합니다. 이태준 선생이 직접 설계에 참여했다고 전해지는 이 한옥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를 따르면서도, 근대적인 편리함과 문인의 절제된 미학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누마루에 앉아 있으면 북악산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대청마루를 지나며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 줍니다.

  • 관람 팁: 현재 수연산방은 이태준 선생의 후손들이 전통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한옥 내부에서 따뜻한 대추차나 칼칼한 생강차 한 잔을 마시며, 1930년대 문인들이 고뇌했던 시대의 아픔과 낭만을 활자 너머로 느껴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② 만해 한용운 심우장 (북향으로 지은 지조의 처소)

앵두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끝까지 지조를 지킨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 '심우장(尋牛莊)'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심우'란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소尋를 찾는 일'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심우장의 가장 큰 역사적 특징은 건물이 동남향이 아닌, 음침하고 해가 잘 들지 않는 '북향(北向)'으로 지어졌다는 점입니다. 만해 선생은 집을 지을 당시,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총독부 청사를 바라보게 된다는 이유로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총독부를 등지는 북쪽 산비탈을 바라보도록 집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혹독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민족의 자존심과 독립을 향한 염원을 굽히지 않았던 선생의 서슬 퍼런 지조가 가옥의 구조 자체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 관람 팁: 마당 한구석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아름드리 향나무가 여전히 푸르른 기개를 뽐내고 있습니다. 단칸방에 가까운 소박한 방 내부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와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화려한 도시 서울 뒤에 숨겨진 묵직한 역사의 무게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③ 성북동 선잠단지와 한양도성 북둔 흔적

앵두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조선 시대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의 시범을 보이며 양잠업을 장려했던 국가 제례 시설인 '선잠단지(先蠶壇)' 터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귀하게 여겼던 조선 왕실의 애민 정신이 깃든 공간입니다.

또한, 앵두마을을 감싸고 도는 낡은 골목길의 축대와 담장 유심히 살펴보면, 과거 한양도성을 수비하던 어영청 북둔의 거대한 성 돌이나 옛 군사 기지의 경계 흔적들이 주택의 일부로 흡수되어 있는 기묘하고도 독특한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주거지와 역사가 하나로 녹아든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현지인들이 아끼는 숨은 맛집 목록

성북동 앵두마을 일대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전통 있는 맛집들과 기품 있는 로컬 푸드 식당들이 탐방객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① 성북동 돼지갈비 (전통 연탄불 백반)

  • 특징: 1970년대부터 성북동 골목을 지켜온 터줏대감이자 기사식당의 전설로 통하는 노포입니다. 가게 입구에서부터 고소하고 달콤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두툼한 돼지갈비를 천연 양념에 숙성시켜 강력한 연탄불에 장인이 직접 빠르게 구워내어 불향이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은은한 온기가 남아 있는 철판에 담겨 나오는 돼지불백과 정갈한 밑반찬, 그리고 맑은 조개국은 투박하지만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깊은 내공의 맛을 선사합니다.
  • 대표 메뉴: 돼지불고기 백반, 돼지갈비

② 국시집 (성북동식 한우 양지 국수)

  • 특징: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과 문인, 정재계 인사들이 단골로 찾았던 성북동의 대표적인 전통 국수 전문점입니다. 가늘고 부드러운 밀국수 면발에 한우 양지를 정성껏 고아낸 맑고 뽀얀 육수를 부어 냅니다. 고명으로 올라간 애호박과 실고추가 시각적인 멋을 더하며,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듯 부드러운 면발과 슴슴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의 국물이 자극적인 현대 배달 음식에 지친 위장을 완벽하게 치유해 줍니다. 함께 파는 부드러운 생선전과 문어숙회도 별미입니다.
  • 대표 메뉴: 한우 손국시, 생선전

4. 실속 있는 주차 정보 및 접근성 가이드

성북동 앵두마을과 심우장 일대는 북악산 자락의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형성된 동네이기 때문에 골목길이 매우 좁고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주민들의 주거 환경을 보호하고 편안한 탐방을 위해 차량은 반드시 아래의 공식 주차장에 두고 도보로 이동하시는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① 성북동길 공영주차장

  • 위치: 서울 성북구 성북동 203-1 일대
  • 요금: 5분당 150원 (1시간 1,800원) / 연중무휴 운영
  • 특징: 성북동 메인 도로변에 위치하여 수연산방이나 심우장, 앵두마을 초입으로 접근하기 가장 편리한 공영 주차장입니다. 주말에는 문화재 탐방객과 등산객들로 인해 주차 수요가 많으므로, 이른 아침 시간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가장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② 성북구립 미술관 주차장 및 주변 대안

  • 위치: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4 성북구립미술관 내
  • 요금: 미술관 이용 및 관람 시 주차 혜택 제공 (면수 협소)
  • 특징: 주차 면수가 많지 않으나 평일 탐방 시 유용합니다. 만약 차량 주차가 정 어렵다면 한성대입구역(4호선) 인근 환승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성북동의 명물인 '성북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초등학교나 심우장 정류장에 내리면 자연스럽게 앵두마을로 진입할 수 있어 도보 여행에 아주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5. 탐방 가이드 마무리 요약

  • 권장 탐방 코스: 4호선 한성대입구역 -> 성북03번 마을버스 탑승 -> 성북초등학교 뒤편 앵두마을 옛길 산책 -> 만해 한용운 심우장(지조의 북향집 관람) -> 수연산방(이태준 가옥에서 전통차 한 잔의 여유) -> 선잠단지 터 및 북둔 흔적 탐방 -> 국시집 또는 성북동 돼지갈비(점심 식사) -> 도보로 혜화문 방면 산책 후 귀가
  • 소요 시간: 도보, 가옥 관람 및 식사 시간 포함 약 3시간~4시간
  • 주의 사항: 앵두마을과 심우장 주변은 현재도 수많은 주민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조용한 주거 지역입니다. 가옥 내부나 골목길을 촬영할 때 거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고성방가를 자제하는 성숙하고 품격 있는 역사 탐방 에티켓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