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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역사탐방 #10] 여주 흥천면 & 금사면

by “동네를 걸으면 역사가 보입니다.” 2026. 6. 16.

(부제: 남한강 물길이 빚어낸 옛 나루터와 나지막한 구릉 속 숨겨진 이야기들)

1. 강물과 바람이 흘러든 자리, 흥천과 금사

1.1 남한강과 복하천이 다정하게 감싸 안은 땅

여주시의 서북단에 위치한 흥천면과 금사면은 지리적으로 남한강의 중류 우안(또는 좌안)과 그 지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릉성 평야 지대입니다.

  • 흥천면은 이천시 백사면, 광주시 곤지암읍과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이천에서 흘러오는 복하천(福河川)이 흥천면의 남쪽과 동쪽을 감싸 안으며 남한강 본류로 흘러듭니다. 이 때문에 홍수 때는 거대한 물바다가 되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경기 남부에서 가장 비옥한 범람원 평야를 형성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복하천

  • 금사면은 흥천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양평군 개군면 및 지평면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습니다. 금사면의 서쪽은 원적산(564m)에서 이어지는 앵자봉(667m) 줄기가 뻗어 있어 지형이 다소 험준한 편이지만, 강가로 나올수록 ‘금사(金沙)’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얀 모래톱이 길게 발달했습니다.

1.2. 한강 수운(水運)의 대동맥과 나루터 문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도로나 철도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수집된 세곡(稅穀)과 특산물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한강 물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여주에는 이른바 ‘여주 8개 나루’가 있었는데, 그중 금사면과 흥천면 일대에는 이포나루(천서리·이포리 인근), 계신나루, 양화나루 등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나루터들은 단순한 배를 타는 곳이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보부상, 뱃사공, 세곡선 관리들이 묵어가던 대규모 주막거리와 시장을 형성하며 인문학적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포나루
여주 양화나루

2. 역사적 흐름

2.1. 선사시대 ~ 삼국시대: 한강 유역 쟁탈전의 최전선

여주 일대는 흔히 ‘흔암리 선사유적지’로 대변되는 청동기 시대 벼농사의 발상지입니다.

흥천면과 금사면 역시 강을 끼고 있는 평야 지대여서 빗살무늬토기 파편이나 돌도끼 등이 구릉지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이곳은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린 최전선 요새가 됩니다.

백제가 초기에 한강 유역을 다질 때 이포나루 일대는 한양 진입을 막는 외곽 방어선이었고,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이 남진할 때는 고구려의 영토(골내근현)가 되었습니다.

이후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반격 및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금사면과 대신면 경계에 있는 파사산(婆娑山)에 대규모 석성을 축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파사성(婆娑城)의 시초입니다.

파사성

2.2. 고려 시대: 불교 문화의 융성과 국가적 요충지

고려 왕조가 들어서면서 여주(당시 황려현)는 태조 왕건을 도운 호족들의 기반이자, 왕실의 원찰들이 대거 들어서는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 도약합니다.

비록 오늘날 행정구역상 북내면에 속하지만 흥천·금사와 바로 이웃한 곳에 고달사지(高達寺址)가 성행했고, 금사면 일대의 사찰들도 이 고달사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습니다.

특히 고달사는 고려 광종 때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전국의 승려들을 통제하던 3대 선종 사찰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흥천과 금사의 나루터들은 고달사로 향하는 수많은 승려와 시주 물품들이 내리던 주요 기착지였습니다.

고달사지

2.3. 조선 시대: 사대부의 은거지와 왕실 재정의 젖줄

조선 시대에 여주는 세종대왕릉(영릉)과 효종대왕릉(영릉)이 이장되면서 ‘능행(陵幸)의 고을’이자 왕실의 특별한 관리를 받는 천택지(天擇之地)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흥천면과 금사면은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입니다.

  1. 사대부들의 은거 및 학문 공간: 남한강의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이포와 금사 일대에 파평 윤씨, 한산 이씨, 여흥 민씨 등 명문가 사대부들이 정자를 짓고 은거하며 학문을 논했습니다.
  2. 수운의 활성화와 민중 삶의 터전: 전국의 세곡선이 이포나루와 양화나루를 거치며 관청의 수세(稅稅) 활동이 활발했고, 이에 따라 장시(場市)가 크게 발달했습니다.

세종대왕릉
효종대왕릉

2.4. 근현대: 의병 투쟁과 6·25 전쟁의 상흔

한말 의병 운동 시기, 여주는 이인영, 이구채 등이 이끄는 경기 의병의 핵심 기지였습니다.

원적산과 앵자봉, 그리고 파사성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일본군과 치열한 유격전을 벌였습니다.

이후 1951년 6·25 전쟁 당시에는 격렬한 전선이었던 ‘지평리 전투’의 배후지이자, 남한강을 건너 북진하려는 미군·아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중공군 간의 ‘이포나루 도하 작전’이 펼쳐진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3. 흥천면(興川面) 깊이 파헤치기

흥천면은 나지막한 야산과 넓은 평야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가구마다 오랜 내력을 가진 집성촌이 많고 유교적 색채와 전통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3.1. 계신리(溪信里)의 숨은 보물: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

흥천면 탐방의 시작점으로 가장 추천하는 곳은 남한강 변에 바짝 붙어 있는 계신리입니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숨은 국가유산이 있습니다.

  • 지정 명칭: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 역사적 가치: 계신리 남한강 변의 거대한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입니다. 전체 높이가 약 3m에 달하는데, 고려 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머리 위에는 고려 시대 마애불 특유의 넓적한 갓(보관)을 쓰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투박하지만 아주 인자한 미소를 지으고 있습니다.
  • 스토리텔링: 이 마애불이 있는 자리는 과거 남한강을 오가던 뱃사공들이 배를 띄우기 전, 무사히 한양까지 갈 수 있도록 강바람과 소용돌이를 막아달라고 기도를 올리던 ‘강신제’의 터였습니다. 마애불 바로 앞으로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수백 년 전 거친 물살과 싸우던 사공들의 염원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3.2. 외사리(外沙里)와 파평 윤씨 집성촌의 내력

흥천면 외사리는 파평 윤씨 가문이 수백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집성촌입니다.

마을 고갯길과 오래된 가옥들 사이로 사대부 문화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 외사리 노소나무와 정자 터: 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느티나무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과거 마을 선비들이 시회를 열던 공간입니다.
  • 민속과 구전: 외사리에는 ‘상여 소리’와 ‘모내기 소리’ 등 경기 남부 고유의 농요가 잘 보존되어 전해집니다. 땅이 기름진 만큼 농업 노동요가 발달했으며,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에 따르면 과거 복하천이 범람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둑을 쌓았던 공동체 문화(두레)가 매우 강했다고 합니다.

3.3. 복하천(福河川) 삼각주와 ‘흥천’ 이름의 유래

흥천면 사무소가 있는 효종로 일대는 과거 복하천의 물길이 크게 휘돌아 나가던 곳입니다.

조선 시대 지리서인 《여지도서》나 《택리지》를 보면, 이 일대는 "땅이 낮아 수해의 염려가 있으나, 한 번 농사가 잘되면 3년을 먹고산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토질이 비옥했습니다.

  • 흥천(興川)이라는 이름: 원래 이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길천면(吉川面)과 권람면(權覽面) 등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두 면을 합치면서, "하천이 융성하여 마을이 일어난다"는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아 ‘흥천’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3.4. 귀백리(歸백里)의 ‘귀향 설화’와 옛 선비들의 자취

귀백리는 말 그대로 "백발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또는 "귀한 이들이 돌아오는 동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 역사 인물 관련 구전: 조선 중기, 조정의 당쟁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한 한 선비가 이곳에 정착하여 평생을 낚시와 학문으로 보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귀백리 일대의 구릉지에는 조선 시대 문인들의 묘역과 신도비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서정적이고 조용한 묘역 답사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4. 금사면(金沙面) 깊이 파헤치기

금사면은 흥천면에 비해 선이 굵고 거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남한강의 가장 좁은 목을 쥐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요새와 나루터가 발달했습니다.

4.1. 한강 유역을 호령한 천혜의 요새: 파사성(婆娑城)

비록 성곽의 행정구역은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에 걸쳐 있으나, 진입로와 그 역사적 문화권은 금사면 이포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 지정 명칭: 여주 파사성 (사적)
  • 성곽의 구조와 내력: 파사산(230.5m) 정상부를 에둘러 쌓은 테뫼식 석성으로, 성벽의 총둘레는 약 940m, 높이는 최고 6~7m에 달합니다. 신라 진흥왕 시대 한강 유역을 확보한 뒤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처음 쌓았으며, 조선 임진왜란 때 승장 유정(사명대사)이 승군을 이끌고 대대적으로 수축(보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 성벽의 미학: 파사성의 돌들은 가공된 사각형 돌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옥수수알처럼 촘촘하게 쌓아 올린 형태입니다. 이 때문에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자연과 완벽히 동화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 정상에서의 조망 (역사적 상상력): 주차장에서 경사가 다소 가파른 산길을 약 20~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시야가 탁 트인 성벽 정상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의 굽이치는 물길과 이포대교, 그리고 멀리 양평 일대의 평야는 가히 압도적입니다. 과거 신라 군사들이 이곳에서 강을 거슬러 오는 고구려의 배를 감시했을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4.2. 사라진 나루터의 영광: 이포나루와 이포리(梨浦里)

파사성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이포리는 조선 시대 한강 4대 나루터 중 하나였던 ‘이포나루(梨浦津)’가 있던 곳입니다.

  • 이름의 유래: 마을 뒤편 야산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루’ 또는 ‘이포’라고 불렸습니다.
  • 조선 수운의 허브: 강원도 청풍, 단양, 영월 등지에서 출발한 뗏목과 정선선들이 한양 마포나루로 가기 전 반드시 이곳에 들러 정박했습니다. 당시 이포나루에는 관청의 수세소뿐만 아니라, 수십 판의 야시장이 열려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포나루 돈은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이 돌 정도로 풍요로운 동네였습니다.
  • 현대의 변화: 1970년대 남한강 배후에 도로가 뚫리고, 결정적으로 충주담 등이 들어서면서 물길이 막혀 나루터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지금은 이포보(洑)가 들어서 현대적인 수변 공원으로 변모했지만, 강가 둔치 곳곳에는 옛 나루터 터를 알리는 표석과 옛 주막거리의 골목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4.3. 금사리(金沙里)와 옛 사기막(沙器幕) 골목

금사리의 명칭은 조선 시대 이 일대 사천(沙川)에서 사금(沙金)이 채취되었고, 강가의 모래가 유난히 희고 고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도자기 원료의 공급지: 여주가 백자와 분청사기로 유명한데, 그 핵심 원료인 백토(白土)와 고령토가 바로 금사면과 북내면 일대 야산에서 대거 채취되었습니다. 금사리 일대에는 조선 후기 국가에 납품하던 사기를 굽던 가마터(사기막) 흔적이 여럿 존재합니다. 지금도 밭을 갈다 보면 조선 시대 백자 파편이 툭툭 걸려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4.4. 이포리 옹기장과 서민 문화의 역사

금사면 일대는 강을 통한 물류 이송이 쉬웠기 때문에 대형 옹기를 굽는 옹기 가마가 발달했습니다.

전국의 장독대로 팔려 나가던 이포리 옹기는 두껍고 단단하며 숨을 잘 쉬기로 유명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현대화로 인해 가마들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포리 골목 구석구석에는 담장 대신 깨진 옹기 조각을 쌓아 만든 ‘옹기 담장’의 흔적이 남아 있어 소박한 서민 문화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5. 완벽한 역사탐방 동선 가이드

흥천면과 금사면의 유적들을 꼼꼼하게 망라하면서 이동 동선을 최적화한 당일치기 풀코스를 제안합니다.

출발지가 어디든, 남한강 서쪽에서 진입하여 강을 따라 북상하는 구조로 짰습니다.

[추천 루트] 코스 개요

흥천면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차량 10분)  - 흥천 외사리 파평윤씨 마을 & 귀백리 구릉지(차량 15분)  - 금사면 이포나루 터 (이포보 수변공원)(차량 5분) - 파사성 주차장 및 파사성 등반 (도보 왕복 1시간)(도보 5분) - 천서리 막국수 거리 (식사 및 마무리)

[시간대별 상세 시뮬레이션]

  • 오전 09:30 ~ 10:20 | 1코스: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
    • 활동: 남한강 변 암벽에 새겨진 고려의 미소를 마주합니다. 아침 나절 강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마애불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고즈넉함의 극치입니다. 사공들의 안녕을 빌던 옛 나루의 흔적을 상상해 보세요.
  • 오전 10:40 ~ 11:50 | 2코스: 흥천 외사리 & 귀백리 옛길 답사
    • 활동: 차를 타고 흥천면의 안쪽 구릉지로 이동합니다. 외사리 마을 입구의 노소나무 아래서 숨을 고르고,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묘역과 신도비가 늘어선 귀백리 길을 조용히 드라이브하거나 산책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선 시대 경기 사대부 문화의 전형적인 배산임수 촌락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 오후 12:10 ~ 13:20 | 점심 식사: 천서리 막국수 거리
    • 활동: 금사면과 대신면 경계에 있는 유명한 노포 거리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동치미 육수와 매콤한 양념, 그리고 따끈한 육수가 탐방의 피로를 미리 씻어줍니다 (맛집 세부 정보는 7번 문단 참고).
  • 오후 13:40 ~ 15:30 | 3코스: 파사성 등반 및 정상 조망
    • 활동: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성벽을 향해 오릅니다. 초반 15분 정도는 경사가 있으니 반드시 운동화나 등산화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성문 초입에 들어서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석성의 위용에 압도됩니다. 성벽 위를 조심스럽게 걸으며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은 이번 탐방 최고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사명대사가 승군을 지휘하던 장대 터(정상)에서 긴 호흡을 해보세요.
  • 오후 15:50 ~ 16:40 | 4코스: 이포나루 터와 이포보 전망대
    • 활동: 다시 평지로 내려와 옛 이포나루의 자취를 찾아봅니다. 현재는 현대식 이포보가 들어서 있지만, 이포보 모양 자체가 백로의 알을 형상화한 것으로 지리적 내력을 담고 있습니다. 강변의 옛 나루 표석을 확인하고, 인근 이포리 골목의 오래된 가옥들과 옹기 흔적을 가볍게 둘러보며 탐방을 마무리합니다.

6. 교통, 주차 및 실전 탐방 팁

6.1. 주차장 포인트 (내비게이션 설정용)

  1. 계신리 마애여래입상 주차: 주소창에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을 치면 강변 좁은 길로 안내합니다. 마애불 바로 앞에 차량 3~4대 정도 댈 수 있는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대형 버스는 진입이 어려우나 승용차는 충분히 진입 가능합니다. 주차비는 무료입니다.
  2. 흥천 외사리/귀백리: 외사리 마을회관 인근 공터나 귀백리 묘역 진입로 초입의 갓길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조용한 농촌 마을이므로 주민들의 농기계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바짝 붙여 주차하는 매너가 필요합니다.
  3. 파사성 주차장: 주소창에 ‘파사성 주차장’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650)을 입력하시면 됩니다. 화장실과 넓은 무료 주차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파사성 정상까지는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6.2. 실전 탐방 주의사항 및 팁

  • 파사성 등반 팁: 파사성은 남향을 바라보고 있어 낮에는 햇빛이 매우 강하게 내리쨉니다. 성벽 위에는 그늘이 전혀 없으므로, 모자, 선글라스, 그리고 생수 한 병을 반드시 챙기셔야 합니다. 성벽 유실을 막기 위해 성벽 바깥쪽 아슬아슬한 곳으로 걷는 것은 위험하니 정비된 탐방로로만 이동하십시오.
  • 문화관광해설사 활용: 이포보 문화광장이나 파사성 초입에 여주시 관광안내소가 있을 경우, 해설사 동행을 요청하면 삼국시대 성곽 축조 방식에 대한 더 깊은 전문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최적의 방문 시기: 6월의 흥천·금사는 복하천 주변의 청보리와 이포보 주변의 야생화가 만발하는 시기입니다. 오전 일찍 움직이셔야 강가의 습한 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7. 미식과 쉼터: 로컬 노포 및 전통 미각

역사탐방의 완성은 그 땅의 기운을 먹고 자란 음식을 맛보는 것입니다.

흥천과 금사 일대는 수운의 중심지였던 만큼, 사공들과 보부상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묵직하고 시원한 음식들이 발달했습니다.

7.1. 천서리 막국수 거리의 내력과 맛집

금사면 이포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천서리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막국수 타운’입니다.

과거 이포나루를 통해 평안도, 강원도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메밀 요리가 정착된 것이 시초입니다.

  • 홍원막국수: 이 지역 막국수의 원조 격인 집으로, 3대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곳의 특징은 자리에 앉자마자 내어주는 주전자에 담긴 ‘따끈하고 매콤 짭조름한 육수’입니다. 후추 향이 살짝 나면서 입맛을 확 돋웁니다. 편육(돼지고기 수육)을 주문해 백김치와 새우젓에 싸 먹은 뒤, 비빔막국수로 마무리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메밀면의 툭툭 끊어지는 식감과 매콤한 양념의 조화가 일품입니다.
  • 봉진막국수: 화끈하게 매운맛을 좋아하신다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양념이 특징인데, 먹을 때는 고통스럽지만 돌아서면 자꾸 생각나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7.2. 민물 매운탕과 쏘가리회 (이포리 일대)

남한강 중류인 금사면 일대는 물살이 세고 바위가 많아 예로부터 꺽지,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모래무지 같은 고급 민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 강변 노포들: 이포보 인근의 오래된 매운탕 집들은 양념을 과하게 쓰지 않고, 고추장과 시원한 민물새우(새뱅이)를 가득 넣어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개운합니다. 수제비를 얇게 떼어 넣은 민물매운탕 한 그릇은 과거 이포나루 사공들이 고된 노동 후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던 최고의 보양식이었습니다.

7.3. 금사 금빛참외 (간식 및 기념품)

만약 탐방 길에 길가에서 노란 참외 원두막을 만난다면 반드시 차를 세우십시오.

금사면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금사 참외’의 본고장입니다.

남한강 변의 사질 토양(모래가 섞인 부드러운 땅)은 물 빠짐이 좋아 참외의 당도를 극대하게 끌어올립니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진한 향은 탐방 중 허기를 달래기에 최고의 간식입니다.